Home > 대한성서공회 > 홍보 > 성서한국
2000 가을 통권 제 46권 3호
명암이 교차되는 인생을 표현한 렘브란트 정재규

‘렘브란트’(Rembrandt 1606.7.15~ 1669.10.4)는 네덜란드의 레이덴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비교적 부유한 제분업자였고 제빵업자이기도 했다. ‘렘브란트’의 외가는 가톨릭교도였고 인척들이 가톨릭교도들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만이 유일하게 기독교의 장로교인이었다. ‘렘브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1691년부터 4년간 레이덴에서 활동중이던 ‘스바넨 부르크’의 제자가 되어 기초적인 훈련을 쌓았다.

이후에 그는 이탈리아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라스트만’이라는 화가로부터 사사받으며 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게 된다. ‘라스트만’은 성경과 신화 그리고 역사에 나오는 인물을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불과 6개월 남짓한 기간 그와 함께 지낸 ‘렘브란트’는 작품의 테마나 화풍에 대단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렘브란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주제나 구도나 형식에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신화적인 내용과 기독교적인 내용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20세 이후로 독자적이고 신앙적인 작품들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게 되었고 자타가 모두 공인하는 세계적인 화가요 미술사에서나 기독교 미술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특별히 그가 평생을 연구한 빛은 현대인들에게도 신비스러운 영감을 자아내게 하는 독특함이 살아 있다. 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 사상 최대의 화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뭐니해도 그의 철저한 신앙심에 있는 것이다. 그는 성경을 부지런히 탐독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빛에 대한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그는 평생에 빛을 사랑했고, 빛되신 예수님을 사랑한 화가였다. 그래서 그는 어두움을 물치는 신비스런 빛을 표현하기를 즐겨했고, 항상 어두운 화면 배경에 인물을 설정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창문이 있든 없든 어김없이 빛이 찾아들고 순간적으로 찾아든 빛의 신비함이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1620년대 말에 이미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는데 이때에 그가 남긴 걸작들을 살펴보면 “돌에 맞아 죽는 성 스테파누스”(1625), “내시의 세례”(1626), “발람의 나귀와 천사”(1626) 그리고 “성전에 나타난 예수”(1627~8), “사로잡힌 삼손”(1627~8), “은화 30냥을 돌려주는 유다”(1629) 등이 있다.

특히 이 시기에 그린 “엠마오의 그리스도”(1628)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고 널리 알려져 있는 명화이다. 이 “엠마오의 그리스도”는 눅24장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강권해서 집으로 모셔들이고 떡을 대접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서 저들에게 주실 때에 비로소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줄 알아보게 되었고 예수님은 순간 자취를 감추시게 된다는 내용인데, 화면에 나타난 장면은 예수님께서 떡을 축사하시고 떼어 주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마치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에 만찬”에 나오는 그림의 내용 즉, 예수님께서 떡을 떼시면서 “이중에 나를 팔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실 때 열두 사도가 깜짝 놀라고 있는 극적인 표현과 흡사하게 대비되고 있다. 특히 ‘렘브란트’는 말씀의 떡이 되시고 빛이 되신 예수님을 한 장면의 화면에 그 의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는데, 영적으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떡인 말씀을 먹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순간적인 빛과 함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지 못하듯이 어두움에 빛이 없으면 갈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진리를 극화시킨 것이요, 빛 되신 예수님을 묵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제작한 작품 어느 곳에서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은 하늘에서 비쳐드는 빛이 사람 표정에 투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빛이 투사됨으로 깨닫는 인간의 심성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빛과 인간 구원의 상관관계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도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체험하게 되며 명암의 생활이 화면에서 더욱 감동 깊게 표현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1634년 가을에 ‘사스키아(saskia)’와 결혼하여 단란한 보금자리를 펼치기 위해 39년 ‘렘브란트의 집’(현재는 미술관)을 구입하였고, 42년에는 유일한 아들 ‘티투스’가 태어났지만 다음 해에 ‘사스키아’가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명암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명암의 생활상으로 인해 그의 화면의 명암이 더욱 가치 있게 창출된 것이다.

또 어느 누구나 그렇듯이 화려한 영광이 있을 때는 신앙생활이 방종하게 되는데, 1930년대 즉 ‘사스키아’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때의 그림을 보면 그의 아내 ‘사스키아’는 멋지게 차려입은 ‘렘브란트’의 무릎에 앉아 있고, ‘렘브란트’는 맥주병을 유쾌하게 들어올리고 고개를 돌려 그림의 바깥쪽을 바라보면서 바보처럼 히죽 웃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선술집을 배경으로 한 그림은 당시 유행되고 있던 선술집 매춘부들과 함께 있는 탕아를 주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선술집의 방탕아”(1636) 그림은 6년 후에 그의 아내를 잃어버리는 어두운 슬픔을 불러오게 되고 자책심과 후회를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말년은 어두운 고통의 연속이었는데 재혼한 여인 ‘스토펠트’를 대상으로 “밧세바”(1654)를 누드화로 그렸고, “목욕하는 여인”(1655)등을 그려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교회위원회의 공식적인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아들 ‘티투스’는 1668년 27회 생일을 맞기 전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도 1656년 채무 변제를 신청할 정도로 악화되었고 재산과 그림들을 경매에 부치기도 했다.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이 선호했던 세련되고 정교한 취향과는 달리 대담한 붓놀림과 어두운 배경의 그림자 연구가 인정을 받지 못하여 소외당하게 되었고 그의 제자들인 ‘플링크’나 ‘바커’ 같은 화가들이 오히려 스승보다 더욱 인기를 누리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 속에서 외치고 있다. 모든 인생살이는 명암이 있다고, 그리고 최후의 영광된 빛은 자신이 차지하리라고...

새롭게 열리는 세상: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박수진
주일학교이야기: 은성이의 노래 송은영
지구촌 소식: 영화 "Miracle Maker" 대한성서공회
모금기행: 비닐하우스 교회의 약속 김례복
명암이 교차되는 인생을 표현한 렘브란트 정재규
성경으로 나라 사랑 이덕주
미얀마에 성경을 보냅시다 서원석
기독교 포털 사이트 대한성서공회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위한 목회적 결단 손인웅
'가라사대'인가 '이르시되'인가 전무용
원문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 대한성서공회
성경무료반포소식 대한성서공회
KBS 소식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출간 2주년에 즈음하여 김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