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대한성서공회 > 홍보 > 성서한국
2000 가을 통권 제 46권 3호
'가라사대'인가 '이르시되'인가 전무용

언제, 쓰지 않는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용어를 선택하는가?


지금도 가끔 개역한글판을 보는 분들로부터 “가라사대”와 “가로되”를 다른 쉬운 말로 고치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이 성서공회로 들어오곤 합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미 개역개정판이 나왔으며, 개정판에서는 이 말을 모두 “이르시되”나 “말씀하시되”로 고쳤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면 정말 잘 되었다고 하며 아주 반가워합니다. 이와 반대로, 개역개정판에서 “가라사대”를 “이르시되”나 “말씀하시되” 등으로 고친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이 말들이 고쳐진 것을 몹시 안타까워 하십니다. 틀린 말도 아니고, 굳이 고칠 필요도 없는 말이고, 꼭 유지하고 보존했어야 하는좋은 말이었는데, 고쳐서 표현이 품위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의 일을 보고, 아주 잘 되었다고 좋아하는 분들과 아주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논의하여 어느 한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역한글판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가 41회 나오고, “예수께서 가라사대”는 85회 나옵니다. 이것을 모두 “예수께서 이르시되”로 통일한 것입니다. 이러하듯, “예수께서 이르시되”는 완전히 새로운 표현이 아니라, 개역한글판에서부터 이미 써 왔던 표현입니다. 틀리거나 잘못된 표현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에 써서 무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르다”라는 동사는 “고자질하다”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도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뜻이 함께 있는 말을 피하는 것도, 성경 번역에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르시되”가, “예수께서 고자질하시되”나 “예수께서 타이르시되”와 같이, 다른 뜻으로 읽힐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르다”는 “말하다”는 뜻으로, 높임이나 낮춤의 개념이 없이 중립적인 말로 쓸 수 있는 말입니다.

“가라사대”는 옛 유교 경전 언해에서 많이 쓰였던 말로, 공자(公子) 왈(曰), 맹자(孟子) 왈(曰) 등의 말을 “공자ㅣ 가라사대”나 “맹자ㅣ 가라사대”로 읽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늘 일정한 품격과 품위가 있는 자리에 쓰였습니다. 이러한 정서가 있는 사람들이 “이르시되”보다는 “가라사대”를 더 품위 있는 말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경전의 언해체에서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허균의 홍길동전을 보면, 거의 모든 곳에서 “길동이 가로되”와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로되”가 특별히 고상하게 표현하려는 문맥에서만 쓴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거의 유교 경전을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한글판 성경 이외의 자리에서는 “가라사대”라는 말을 볼 수가 없습니다. 사용되지 않는 말입니다.

물론 개역한글판에서 자유자재로 쓰고 있는 많은 문장 어미들과 ‘-라’ 종결형 어미 등도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같은 수준에서 사어(死語)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문장의 이러한 어미는 전체적으로 개역한글판 성경의 번역 특성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문체 특징이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이고, “가라사대”는 어미만큼 중요한 문체 특징은 아니기 때문에 고칠 수 있었습니다. 명사 ‘말(言)’은 동사 ‘마르다(裁)’와 파생관계로 짝을 이루는 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원을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마름질 하는 것은 옷감으로 옷을 만들려고 재단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하나의 천을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말’은 소리를 가지고 그 소리가 나타내는 것과 지칭 대상이 아닌 것을 나눕니다. 소리로, 말로, 존재하는 모든 대상 세계를 마름질합니다.

“가로되”와 “가라사대”는 “가르다”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짝을 이루는 말로 보입니다. 말로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것을 가릅니다. 예를 들어 보면, ‘물’이라는 말로 ‘물’인 것과 ‘물’이 아닌 것을 가르는 것입니다. 모든 말은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을 다른 것들과 가릅니다.

“이르(云)다”도 일정한 소리로, ‘그 소리가 나타내려는 사물에 인식이 닿는다’는 점에서, 동사 “이르(至)다”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모두 ‘소리’로 그가 나타내려는 대상을 나머지 대상들로부터 갈라 내고, 마름질해 내는 것입니다.

언어로 그 지칭 대상에 이르(至)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들이 될 수도 있고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서 선생이 될 수도 있고, 제자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한 말이 달리 쓰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발화하는 ‘소리’ 쪽에서 보면 이르(云)는 것이고, 그 말이 지칭 대상에 ‘도달’하여 그 대상을 짚어 내는 결과 쪽에서 보면 대상에 이르(至)는 것입니다.

이는 동전 하나가 양쪽 면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어원 추정은 논증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르다”라는 말이 국어 사전들이 설명하듯이, “무엇이라고 말하다”라는 뜻을 중립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말의 기능면에서만 보면 “이르시되”나 “가라사대”나 같은 말이지만, 그 말이 쓰였던 환경에 따라서, “가라사대”가 품위 있는 말로 인식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서적으로 이러한 공감대가 있는 분들은 이것을 바꾼 것이 몹시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이러한 공감대가 거의 없습니다. 또 “가라사대”가 언제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식이 없는 것이 그들이 “무지한” 것이라고 탓할 수는 있지만, 이 말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대가 전혀 없는 점은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가라사대”가, 오직 지금은 쓰이지 않는 죽은 말일 뿐입니다. 때로는 옛스러운 것이 무게와 권위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낡은 것이나 버려야 할 것으로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어떠하든지, 이 말을 ‘사어(死語)’라고 생각해서, 지금 쓰는 말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개정위원들은, 이 말이 지금은 쓰지 않는 ‘죽은 말’ 곧 “사어(死語)”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옛 말을 버리고, 지금 쓰이는 말로 통일하는 것에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를 한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이 낱말을 바꾼 것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다시 백 년이나 이백 년쯤 지나서, 사람들이 모두 “이르되”를 버리고 “가로되”와 “가라사대”를 쓰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달라질 때도 다른 결정이 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을 한다면, 또 반대로 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소수는 남게 될 것입니다. 소수의 의견이라 해도 언제든 무시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소수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로되”와 “가라사대”를 “이르되”와 “이르시되”로 바꾼 것은 유일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을 따른 하나의 선택입니다.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을 번역하거나 개정을 할 때에, 새로 생겨서 쓰이는 첨단 유행어를 쓰지는 않습니다. 상품 광고를 하거나 할 때에는 오히려 첨단 유행어를 만들어서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번역에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쓰는 보편적인 낱말들을 번역어로 사용합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옛 말, 곧 ‘사어(死語)’도 쓰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두루 사용하는 말을 씁니다. 지나치게 앞서지도 않고, 지나치게 뒤지지도 않으려는 것입니다.

새롭게 열리는 세상: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박수진
주일학교이야기: 은성이의 노래 송은영
지구촌 소식: 영화 "Miracle Maker" 대한성서공회
모금기행: 비닐하우스 교회의 약속 김례복
명암이 교차되는 인생을 표현한 렘브란트 정재규
성경으로 나라 사랑 이덕주
미얀마에 성경을 보냅시다 서원석
기독교 포털 사이트 대한성서공회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위한 목회적 결단 손인웅
'가라사대'인가 '이르시되'인가 전무용
원문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 대한성서공회
성경무료반포소식 대한성서공회
KBS 소식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출간 2주년에 즈음하여 김중은